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조선 개혁 군주로 평가받는 22대 왕 정조에 비견되는 위인으로 칭송한 김준혁 한신대 역사학 교수가 경기 수원정 민주당 후보로 결정됐다.

김 교수가 지난 6일 경선에서 당 원내대표 출신의 박광온 3선 의원을 꺾은 데는 이 대표를 극찬한 자신의 저서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21년 8월 출간한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에서 억강부약(抑强扶弱·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지원)이란 말이 다시 이 세상에 등장해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환희로 눈물을 흘렸다는 정조의 발언을 빌어 이 대표의 대선 출마를 상찬했다.

'어린 시절 고통', '가족 간 불화와 포용' 등이 정조와 닮은 이 대표의 대선 출마 선언은 정조의 개혁 선언문인 '경장대고(更張大誥)'와 같은 선상에 있다는 호평도 했다.

김준혁 한신대 교수 (유튜브 스픽스 캡처)
김준혁 한신대 교수 (유튜브 스픽스 캡처)

2021년 12월 유튜브 영상에서는 "정조는 백성과 엄청난 소통을 했다. 이 후보도 굉장히 뛰어난 소통 리더다. 이 후보 생가 앞에 200년 넘은 큰 소나무의 기운이 이재명한테 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책의 출판과 유튜브 발언 등을 계기로 대표적인 친명 인사로 당원들에게 각인된 덕에 이번 경선 승리를 따낸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대표의 인생 경로는 정조와 매우 다른 데다 정조의 기득권 혁파 정책이 대부분 좌초되거나 국가 패망을 앞당기는 꼴이 돼 개혁을 고리로 한 두 사람의 연결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

정조는 1776~1800년 재위 기간에 서얼 출신의 규장각 등용, 과학기술 육성, 왕실 친위부대 장용영 설치, 수원화성 축조, 신해통공, 탕평책 등 치적을 쌓았다.

시전상인들의 특권을 없애 소상공인을 육성하기 위한 신해통공은 노론 세력의 강력한 반대를 딛고 시행됐으나 농업이나 공업이 뒷받침되지 않아 대실패로 끝났다.

정파별로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은 일시적인 왕권 강화와 정치 안정에 기여했으나 조선 몰락을 앞당기는 요인이 됐다.

자신의 사후 왕권 약화를 막으려고 세자(순조) 부인의 아버지 김조순에게 과도한 힘을 실어준 탓에 세도정치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순조 즉위 이후 헌종·철종까지 60년간 권력을 독점한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외척의 부정부패로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지고 국력은 급격히 쇠약해졌다. 

조선 제22대 왕 정조

결국 강자를 억압해 약자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일련의 개혁 정책은  포퓰리즘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다만, 정조는 규장각에 최정예 관료 양성 코스를 설치해 인재를 길러내고 스스로 밤낮없이 열심히 공부한 애민 정신의 진정성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대장동·백현동 개발업자들에게 수천억 원의 이익을 몰아주고 공천에서 사천 논란을 빚은 이재명 대표와 정조는 이 대목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다수 의석을 동원한 장관·검사 탄핵과 법안 의결, 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대출 공약에서는 1999년부터 14년간 통치한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이 대표의 얼굴이 겹쳐진다.

암 투병 중인 차베스 (유튜브 캡처)
암 투병 중인 차베스 (유튜브 캡처)

차베스는 풍부한 석유 수입을 토대로 무상 교육·의료 등 포퓰리즘 정책을 펴 빈민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으나 국가는 중남미 최부국 지위를 잃고 졸지에 최빈국 신세로 전락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 대표를 '경기도의 차베스'라고 칭하면서 "무상 포퓰리즘으로 자기 나라를 세계 최빈국으로 몰아넣은 차베스처럼 경기도를 망치고 대한민국을 거덜 내려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따라서 이 대표는 천광암 동아일보 논설주간의 지난 10일 자 <'이재명 사천' 논란과 '탐욕'> 칼럼의 결론부를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대표는 이번 공천을 통해 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그림을 완성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선택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당장 많은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당 지지율의 하락세가 '탐욕 알고리즘'의 '결과값'을 예고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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